[이 아침에] 새해 당부
늘 떠오르는 해지만, 새해 아침에 맞는 해는 언제나 새롭다. 지난해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새로운 날의 소망을 담고 떠오르기 때문이다. 새해를 맞으며 당부의 말이 오간다. ‘새해에는 건강히 지내라고, 하는 일마다 잘되라고, 소원 성취하라고’. 말로 단단히 부탁하는 당부가 고맙다. ‘풀꽃’이라는 시로 이름을 알린 나태주 시인의 ‘새해 아침의 당부’라는 시가 있다. ‘올해도 잘 지내기 바란다/내가 날마다 너를 생각하고/하나님께 너를 위해 부탁하니/올해도 모든 일 잘될 거야’. 시인은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푸근한 소리로 새해를 맞는 이들에게 올해도 모든 일 잘될 것이니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고 걱정도 하지 말고 또박또박 걸어서 앞으로 가기만 하라고 당부한다. 부모님이 계신 고향을 떠나 도시에 사는 아들이 있었다. 효심이 깊었던 아들은 고향에서 농사짓는 연로하신 부모님이 늘 마음에 걸렸다. 좋은 교육을 받고, 번듯한 직장에서 나름대로 괜찮게 사는 아들이었다. 착한 아들은 시간만 나면 부모의 농사일을 돕기 위해 고향을 찾았다. 꽤 큰 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농사일은 끝이 없었다. 모내기와 추수는 물론, 비료 주기, 농약 뿌리기, 잡초 제거하기, 물 대기 등 일 년 열두 달 쉼 없이 이어지는 농사일에 아들도 슬슬 지쳐갔다. 그날도 부모님을 돕기 위해 고향에 내려온 아들이 새벽에 부모님과 함께 널따란 들판 앞에 섰다. 해도 해도 끝없는 일, 아무리 부지런히 일해도 표나지 않는 일이 갑자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이런 아들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아버지가 말했다. ‘눈아, 겁내지 말라 손이 있다!’ 아들의 가슴에 파고든 이 말은 초등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고 은근히 낮잡아 보던 배우지 못한 아버지의 말이 아니었다. 눈앞에 보이는 일들에 치여 두려움으로 마주한 숱한 날들을 성실한 손으로 감당해 낸 농부의 외침이었고, 두려움에 주저앉지 않고 몸으로 부딪치겠다며 던지는 출사표요, 결국은 눈에 들어오는 두려움을 손의 꾸준함으로 이겨냈다는 체험이 담긴 지혜의 말이었다. 우리의 눈앞에도 2024년이라는 널따란 들판이 펼쳐졌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무섭다. 전쟁과 재해가 끊이지 않는다. 올 한 해도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더구나 세상에서는 반갑지 않은 소리만 크게 들린다.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여기저기서 쉴 새 없이 터진다. 요즘은 나만 잘한다고 안녕을 장담할 수 없는 세상이다. 또다시 시작되는 한 해를 바라보면 솔직히 겁부터 난다. 불확실한 미래를 내다보면 두려움이 밀려오고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아무리 세상이 험할지라도 거친 세상이 토해내는 두려움을 이길 무기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눈에 들어오는 일의 무게감을 이겨내게 하는 것이 성실한 손이라면, 마음속에 생긴 두려움을 이기게 하는 것은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손이다. 새해를 맞아 스스로 이른다. ‘눈아, 겁내지 말라 손이 있다’. 눈앞에 가득한 두려움을 이겨낼 성실한 손이 있다. 험한 길 홀로 가게 내버려 두지 않고 붙잡아 줄 손도 있고, 내가 잘되기를 빌어 주는 기도의 손도 있다. 그 귀한 손이 있는데 겁낼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 손을 의지해서 새해 당부를 한다. ‘올해도 모든 일 잘될 거야’라고 말이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새해 당부 새해 당부 새해 아침 이웃집 할아버지